곰 사육과 동물의 권리

한국 곰 사육의 시작과 현재 : 40년의 비극

라일락2025 2025. 5. 7. 11:50

 

곰 사육의 시작, 웅담 산업이라는 명분

한국에서 곰 사육이 제도적으로 시작된 해는 1981년입니다. 정부는 당시 웅담 수입이 차단되자, 그 대체 방안으로 곰 사육을 허용하게 됩니다. 이 결정은 동물복지에 대한 고려 없이, 전통 한방 치료와 농가 소득 증대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어린 반달가슴곰이 대량 수입되었고, 국내 농가에서 이들을 사육하며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한 산업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당시에는 생약 시장의 성장세에 힘입어 고가의 웅담이 일부 계층에서 높은 수요를 자랑했지만, 그 이면에는 야생 동물을 사육용 자원으로 전락시킨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곰은 고도로 지능적인 야생동물이며, 넓은 영역을 이동하며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육장은 대부분 1평 내외의 비위생적 철창 구조로, 곰은 그 안에서 평생을 움직이지도, 자유롭게 활동하지도 못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조차 억눌린 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생명체의 삶이라기보다 도구로서의 존재에 가까웠습니다. 곰 사육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비인도적 생명 착취라는 점에서 반드시 조명되어야 할 주제입니다.

 

📌 출처: 환경부 「곰 사육 정책 현황 및 개선 방향」(2021)



한국 곰 사육의 시작과 현재 : 40년의 비극
한국 곰 사육의 시작과 현재 : 40년의 비극

 

사육 곰의 현실: 움직일 수도 없는 철창 속 생

현재 한국에는 약 36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철창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20년 이상을 사육장에서 보낸 고령 개체들로, 이미 여러 번 웅담 채취를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곰 사육 농가는 대부분 노후화된 상태이며, 곰의 복지를 위한 시설 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좁은 철창, 자극 없는 환경, 불균형한 식단은 곰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지속적으로 안겨줍니다.

 

곰은 본래 하루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사냥하고 탐색하는 습성을 가진 동물입니다. 하지만 사육장 안에서는 한 발짝 움직이기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억압은 자해 행위, 무기력증, 반복 행동장애 등 다양한 행동 이상 증상으로 이어지며, 이는 학계에서도 중대한 동물학대의 징후로 간주됩니다. 그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똑같은 고통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동물은 감정을 지닌 존재입니다. 특히 곰은 외로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고등 포유류입니다. 이들에게 가해지는 침묵 속 고통은 우리가 감각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대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철장안에 갇혀있는 사육 곰
< 출처 : 동물자유연대 >

 

웅담 산업의 쇠퇴와 제도적 공백

1990년대 이후, 웅담 수요는 건강 정보의 투명성과 동물복지 의식 상승으로 인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곰 사육 산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바로 정부 정책의 절반짜리 중단 조치 때문입니다. 1993년 이후 곰 수입과 번식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기존에 사육 중이던 곰은 죽을 때까지 사육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곰은 출구 없는 철창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으며, 농가도 사육을 멈추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어지게 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정부는 사육 농가에 대한 직접 보상이나 사육 종식 지원 예산을 제대로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곰의 보호 및 재활 프로그램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곰을 사육하는 농가는 경제성도, 복지도, 해답도 없는 사육을 강제로 이어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곰과 사람 모두를 괴롭게 하는 구조이며, 정책적으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현재 일부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은 ‘곰 사육 종식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예산 부족, 농가 반발, 법적 사각지대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가가 생명권 문제를 회피할 때, 그 책임은 결국 사회 전체로 전가됩니다.

 

 

구조와 보호, 희망이 있는가?

다행히도 몇몇 시민단체와 비영리 기관들은 곰 구조 활동과 보호소 설립 운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동물자유연대는 사육장에서 구조된 곰들을 위해 보호소를 운영하며, 자연과 유사한 환경에서 곰이 생애 마지막을 온전히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곰이 흙을 밟고, 나무를 오르고, 햇볕을 쬐는 기본적인 활동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육 곰이 단지 ‘보호 대상’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2020년 이후 구조된 일부 사육곰들은 보호소에 이송된 후, 몇 달 후엔 뒹굴고, 나무에 오르고, 자신의 공간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의 변화는 곰이 단순한 산업 자원이 아닌, 감정과 기억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백 마리의 곰이 사육장에 남아 있으며, 이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는 시설과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곰 한 마리를 구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000만 원 이상이며, 이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희망은 있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곰 사육 문제를 바꾸기 위한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첫 번째 행동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에 아직 곰을 사육하는 곳이 있어?’라고 묻지만, 정확히 그 무지가 곰 사육 문제를 더욱 오래 지속되게 만든 배경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곰 사육 종식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웅담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관련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청원에 동의하며, SNS나 블로그를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윤리적 소비를 실천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동물권을 존중하는 제품과 브랜드를 선택하는 일은 사회적 연대를 확대하는 의미 있는 행동입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 동물권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생명존중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미래에 보다 윤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주체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사육 종식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철창을 넘어서 : 공존의 미래를 위한 선택

우리가 오늘 곰 사육 문제를 외면한다면, 내일은 어떤 생명이 철창에 갇히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반달가슴곰은 한반도 고유종이며, 우리 자연의 일부이자 문화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평생 철창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이는 단지 한 종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윤리적 실패로 기억될 것입니다.

 

곰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시작되어야 하는 과제입니다. 지금의 곰 사육 문제는 인간이 만든 문제이기에, 인간의 선택과 책임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철창을 넘어서, 생명과 공존의 가치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