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사육과 동물의 권리

곰은 왜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을까?

라일락2025 2025. 5. 7. 16:55

 

‘웅담’이라는 산업이 만든 착취의 프레임

한국에서 곰 사육이 제도화된 배경에는 ‘웅담 산업’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곰의 쓸개에서 추출한 웅담은 수천 년 전부터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 사용되어 왔으며, 특히 간질환과 해열, 해독 등의 효능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 웅담이 1980년대 국내 건강식품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면서, 정부는 외화를 절감하고 한약재 자립을 도모한다는 명분 아래 1981년 곰 수입과 사육을 허용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당시 농가 소득 증대 수단으로도 활용되었고, 그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약 500마리 이상의 어린 반달가슴곰이 한국에 들어와 철창 속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산업 구조가 곰을 단지 ‘약재 원료’로 취급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생명권이나 복지에 대한 고려 없이, 곰은 생산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당시에는 동물복지 개념이 희박했고, 곰 사육은 법적·도덕적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진행되었습니다. 웅담 채취 과정은 곰에게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며, 이는 지금도 국내 일부 농가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곰 사육은 단순한 산업적 선택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생명 착취의 프레임에서 출발한 구조적 문제입니다.

 

 

곰은 왜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을까?
곰은 왜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을까?

 

곰 사육이 사라지지 않는 다섯 가지 이유

한국에서 곰 사육이 중단되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이유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복잡성은 다섯 가지 핵심 원인으로 나뉩니다. 첫째, 정책의 불완전성입니다. 1993년 이후 정부는 곰 수입 및 번식을 금지했지만, 기존 사육 개체에 대한 관리나 종식 계획은 수립하지 않았습니다. ‘사육 중단’은 선언되었지만 ‘사육 종식’은 이뤄지지 않은 셈입니다. 둘째, 보호소 부족과 예산 문제입니다. 구조된 곰을 수용할 수 있는 국립 보호소는 매우 제한적이며, 시설 확충에 필요한 예산도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사육 농가의 경제적 반발입니다. 곰을 '국가가 허용한 자산'으로 인식하는 농가들은 정부로부터 명확한 보상이나 매입이 없는 한 사육 중단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넷째, 일부 농가에서는 불법적 활용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웅담 밀거래, 관광용 전시, 영상촬영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어 사육 유지의 유인이 남아 있습니다. 다섯째, 사회적 관심 부족입니다. 대중과 정치권 모두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조명하지 않으며, 동물복지 의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 정책은 왜 해결책이 되지 못했는가

한국 정부는 곰 사육에 대한 관리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정책은 단지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선언에 그쳤을 뿐, 기존 사육 개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계획은 부재한 상태입니다. ‘사육 중단’이라는 조치는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사육 상태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구조 보호소 부족, 예산 미편성, 사육 농가와의 갈등 회피 등으로 인해 정부는 사실상 곰 사육 문제를 민간에 떠넘긴 형국입니다.

 

또한, 국회와 행정부 간의 책임 미루기도 문제입니다. 곰 사육 종식을 위한 입법이나 정책적 합의는 번번이 무산되었고,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사이의 관할 불분명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 곰은 제도의 그늘에 갇힌 채 생을 마감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책은 선언이 아닌 실행이 되어야 의미가 있으며, 특히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정부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미룰 수 있는 사안'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사육 농가와 곰 사이에 존재하는 딜레마

사육 농가는 정부가 허용한 산업 구조에 따라 곰을 들여왔으며, 곰은 그들에겐 일정한 재산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웅담 시장의 붕괴와 소비자 인식 변화로 인해 곰이 더 이상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농가는 곰을 방생할 수도 없고, 안락사시키기도 어렵습니다. 그 결과는 철창 속에 방치된 수백 마리의 곰들입니다. 이들은 관리되지 않고, 영양 상태도 열악하며, 행동 장애나 자해 증상을 보이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육 농가는 경제적 손실과 정부 지원 부족에 대한 불만을, 곰은 생명으로서의 고통을 안고 있는 구조입니다. 누구도 이 문제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않으며, 이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정책 부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순히 농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는, 이 구조 자체가 국가 주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개인의 희생이 아닌 제도적 전환과 구조적 책임 인식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문제를 계속 덮는 사회, 침묵하는 제도

한국 사회는 곰 사육 문제를 비주류 이슈로 인식하며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론 보도도 드물고, 교육 커리큘럼이나 공적 담론에서도 이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아직도 곰을 사육하냐’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정보가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침묵은 곰의 고통을 더욱 장기화시키며, 제도 개선에 대한 시민 압력을 낮추는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게다가 정치권은 동물권을 ‘표가 되지 않는 사안’으로 치부하며 우선순위에서 밀어냅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사육 곰 문제를 외면하고 있으며, 법률 제정 시도도 관련 이익 단체의 반발로 무산되기 일쑤입니다. 곰의 생존은 결국 시민의 관심과 언론의 보도, 정치의 결단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침묵하면, 이 문제는 또 다른 10년, 20년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뜬장에 갇힌 곰
뜬장에 갇힌 곰 <출처 : 녹색연합>

 

곰 사육을 멈추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이제는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시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존재합니다. 첫째, 웅담 제품과 관련된 모든 소비를 중단해야 합니다. 둘째, 곰 사육 종식을 촉구하는 시민 청원이나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여론 형성은 정치권과 정책 당국에 실질적 압력을 줄 수 있는 수단입니다. 셋째, 사육 곰 구조를 위한 후원과 기부, SNS를 통한 정보 공유 등을 통해 구조 활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 역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사육 곰 종식 로드맵 수립, 농가 보상 체계 마련, 구조 보호소 예산 편성, 밀거래 단속 강화 등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동물권 교육과 공적 담론을 강화하여 시민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야 합니다. 곰 사육의 종식은 단순한 산업 종료가 아닌, 생명에 대한 사회의 존중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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