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과 동물원 곰, 출발은 달랐지만 고통은 닮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육곰은 주로 웅담 채취를 위한 목적으로 길러졌고, 동물원의 곰은 관람을 위한 전시 동물로 도입되었습니다. 목적은 다르지만 **두 곰 모두 ‘철창 안에서 인간의 목적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특히 사육곰은 좁은 철창에서 평생을 웅담 채취 대상으로 살아왔고, 동물원 곰 역시 비자연적인 환경, 강제적 전시, 사회적 고립이라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출발은 달라도 이들이 겪는 고통의 양상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곰은 넓은 서식지, 높은 지능, 감정을 지닌 동물입니다. 그러나 사육곰은 단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동물원 곰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는 야생동물로서의 본성은 무시된 채 인간 중심의 필요에 의해 생을 제한받고 있는 공통된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 둘을 구분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둘 모두 ‘곰답지 못한 삶’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목적은 다르지만, 시스템은 닮아 있습니다
사육곰 산업은 곰을 자원화하는 산업 시스템에서 비롯되었고, 동물원은 교육과 보전을 표방하는 문화 시설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운영 구조를 보면, 두 시스템 모두 곰의 권리를 철저히 통제하고, 인간의 판단과 필요에 따라 생존을 결정짓는 구조입니다. 사육곰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육되고, 동물원 곰은 관람객의 흥미와 수익을 위해 전시됩니다. 둘 다 곰의 의지와는 무관한 시스템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일부 동물원에서는 사육곰 못지않은 열악한 환경이 문제로 지적돼 왔습니다. 폐사율, 스트레스 행동, 먹이 제한 등은 ‘사육곰 문제’ 못지않은 윤리적 쟁점입니다. ‘전시를 위한 사육’이라는 점에서 동물원과 곰 농가는 구조적으로 닮아 있으며, 이로 인해 ‘동물 보호’라는 이름이 오히려 정당화된 착취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 곰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곰 사육 종식 후, 구조된 곰의 삶은 어떤가?〉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츄어리와 동물원의 차이, ‘자유’의 여부입니다
생츄어리는 구조된 동물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설계된 비공개 보호 공간입니다. 반면 동물원은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해 동물을 제한된 공간에 전시합니다. 생츄어리에서는 곰이 나무를 타고, 땅을 파고, 숨을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며, 인간의 시선으로부터도 일정 부분 보호됩니다. 이는 동물의 본성을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동물원은 관람이라는 목적 때문에 곰의 행동반경이 제한되며, 환경 풍부화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인간의 관찰을 위해 곰은 낮에도 밖에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부자연스러운 습성은 무시되기 쉽습니다. 이 두 공간의 가장 큰 차이는 곰이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없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곧, ‘보호’와 ‘전시’라는 철학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교육과 보전을 내세우는 동물원의 딜레마
동물원은 종종 교육과 멸종위기종 보전을 명분으로 운영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관람용으로 전시되는 동물 대부분은 보전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종이거나, 생태계 복원이 어려운 개체들입니다. 곰 역시 국제적 멸종위기종임에도, 한국의 동물원에서 번식이나 복원 프로젝트가 실질적으로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동물의 생태를 교육하기 위한 공간이라면, 정적이고 인위적인 철창 속 곰이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전시는 동물의 행동을 오해하거나, 인간 중심의 생명관을 내면화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교육이 목적이라면 가상현실, 다큐멘터리, 생츄어리 견학 등 동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은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인가, 동물을 위한 공간인가?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동물을 공간에 가두는 이유가 정말 동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한 것인지 말입니다. 사육곰은 그 목적이 명확히 상업적이었기에 비판받았고, 이제는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원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곰의 전시는 과연 윤리적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동물권의 관점에서 보면, 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가 아니라 ‘자율성 있는 삶’입니다. 곰은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존재의 존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제 ‘보여주기 위한 동물’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시보다 동물의 본성을, 관람보다 생명을 중심에 두는 구조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짜 보호이고, 진짜 공존의 시작입니다.
구분이 아닌,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육곰과 동물원 곰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동물의 삶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경계는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사육인가 전시인가’라는 외형적 구분보다, 그 동물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철창 속에서 살아가는 곰은 어디에 있든, 결국 자유를 잃은 생명입니다. 동물원은 바뀌어야 합니다. 생명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이제는 인간의 호기심보다 생명의 가치가 우선되는 시대입니다. 곰에게도, 모든 동물에게도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이 글이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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