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사육과 동물의 권리

곰 사육 종식을 위한 청원과 입법 운동 정리

라일락2025 2025. 5. 12. 10:24

 

사육곰 문제, 왜 입법이 필요했는가

한국의 사육곰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대표적인 동물복지 이슈입니다. 1981년 정부는 외화를 벌기 위한 목적으로 아시아흑곰의 수입을 허용했으며, 이후 약 1,400마리에 달하는 곰들이 사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웅담 채취가 불법화되면서, 사육은 가능하되 처리와 유통은 불법이라는 모순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곰에게 평생 철창 속 고통을 안기고, 농가에게는 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막다른 골목을 제공한 셈이었습니다. 수의학적 관리나 복지 기준도 전무해 곰들은 이름 없이 번호표만 부여된 채 존재했으며, 국가의 인식 부족은 그들의 고통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입법은 이러한 비정상을 바로잡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곰 사육의 법적 금지는 동물의 생명권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선언이자, 사회가 동물과의 공존을 선택했다는 역사적 기준선입니다.

 

👉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정부는 왜 곰 사육을 막지 못하는가?〉 글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곰 사육 종식을 위한 청원과 입법운동 정리
곰 사육 종식을 위한 청원과 입법운동 정리

 

청원 운동, 시민의 손에서 시작된 변화

곰 사육 종식을 위한 여정은 시민들의 연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시민들은 거리 서명, 온라인 청원, 국회 민원 등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곰에게 자유를’ 캠페인은 단기간 내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했고, 이는 단순한 사회적 관심을 넘어 국회를 움직이는 입법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곰을 위한 연대, HSI, 녹색연합 등은 이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캠페인 외에도 국회 토론회, 국정감사 질의자료 제공 등 제도적 접근을 병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청원은 정치 참여의 확장형으로 기능하며, 동물 문제도 시민의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2021년 이후로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별도로 국회 청원이 가능해져 입법 제안서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구조가 갖춰졌고, 이는 곰 사육 금지를 위한 입법안 제출에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 이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은 〈곰 보호 캠페인 참여 방법과 후기〉에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통과 촉구 청원
곰 사육 법안 금지 특별 법안 촉구를 위한 청구 < 출처 : 녹색연합>

 

국회의 움직임, 드디어 법으로 다가서다

시민과 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는 결국 정치권을 움직였습니다. 2022년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곰 사육 금지 법안’에 대한 공식 논의를 시작하였고, 다수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법안 공동 발의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결과, 2023년 12월 20일 제400회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은 2026년부터 곰의 사육, 증식, 거래, 웅담 채취를 전면 금지하며, 남은 사육곰에 대해서는 국가 및 지자체의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사육곰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률을 넘어서, 한국 사회가 동물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힌 중요한 선언이라 평가됩니다. 법안 발의부터 통과까지 약 3년에 걸친 노력에는 시민단체, 수의사, 생물학자, 법률 전문가 등이 결합했으며, 이는 단순한 로비가 아닌 다학제적 사회 연대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입법 이후에도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법률 통과는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여전히 300마리 이상의 사육곰이 남아 있으며, 이들의 구조와 보호소 이전, 장기적 복지 시스템 구축 등은 실질적 해결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보호소는 일부 민간 및 지방정부 주도로 조성되고 있지만, 공간과 인력, 예산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구조된 곰은 트라우마 회복, 건강관리, 풍부한 환경 조성 등 복합적인 돌봄이 필요하며, 이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육농가의 보상 문제는 예산 확보와 기준 수립이 필요한 복잡한 정책 사안입니다. 법은 길을 제시했지만, 이 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중앙정부, 지자체, NGO, 시민이 함께 만드는 실행계획이 필수입니다. 특히 2025년까지는 도살과 웅담 채취가 합법인 상황이기 때문에, 이행 전환기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사육곰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선, 지금부터의 실행력이 입법만큼 중요합니다.

 

 

곰에게 자유를, 입법 그 이후를 준비합니다

사육곰 금지는 선언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구조된 곰들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곰다운 삶’이 보장되어야만, 입법의 의미도 온전히 실현됩니다. 이를 위해선 생츄어리(동물 보호구역) 확충, 시민 참여형 돌봄 체계, 국가 차원의 장기 복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합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처럼 시민 주도로 생츄어리를 조성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한 시도이며, 이러한 민관 협력 모델은 향후 사육곰 구조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입법 이후의 사회는 단순히 곰을 ‘버티게 하는’ 환경이 아니라, 곰이 주체로 살아가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번 입법운동은 동물을 위한 최초의 법제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존중하는지를 보여준 문화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곰을 위해 싸우는 시대를 지나, 곰과 함께 사는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법이 만든 문은 열렸고, 이제 우리는 그 문 너머의 삶을 설계할 차례입니다.